사실 시장은 작지만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해 벌써 돈을 버는 분야가 있다. 각종 물질의 표면 구조를 분석하는 장치로서 SPM(Scanning Probe Microscope)이라는 장치가 있다. 이 장치는 매우 뾰쪽한 탐침이 피에조 물질에 연결되어 전압에 따라 표면을 이동하는 것인데, 표면원자와 탐침 사이의 힘이나 전류를 측정하여 표면의 원자 또는 전자의 구조를 알아낸다.
원자크기의 해상도가 필요하기 때문에 아주 뾰쪽한 모양의 탐침이 필요하고, 따라서 이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요즈음은 탐침을 어느 정도 뾰쪽하게 준비한 후 그 끝에 다시 탄소나노튜브를 부착하여 더욱 뾰쪽한 탐침을 만든다. 직경이 수십 나노 정도 되는 다층탄소나노튜브는 직진성이 좋고 금속의 성질에 가깝기 때문에 이 목적에 잘 부합된다. 이 팁의 장점은 길이가 길어 홈이 깊이 파진 구조의 모양을 잘 재현할 수 있고 탄소나노튜브가 역학적으로 견고하기 때문에 기판에 홈을 파는 일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탄소나노튜브가 부착된 AFM 팁의 모형도. 이를 이용하여 요철형상을 관측하면 훨씬 정밀한 형상을 얻을 수 있다.
A. 왜곡된 이미지 B. 정밀한 이미지
놀라운 것은 홈의 폭을 수 나노 내지 수십 나노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기존의 어떤 식각장치도 얻을 수 없는 작은 선폭이다. 또한 탄소나노튜브는 탄성이 좋아 탐침이 작업 도중 휘어도 곧바로 원래의 모양으로 돌아올 수 있다. 기존의 어떤 나노선도 이렇게 작은 직경과 우수한 탄성을 가질 수는 없었다. 특히, 기존의 SPM 탐침은 기판을 식각하는 경우 탐침이 쉽게 손상되어 쓸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탄소나노튜브는 이 점에서 굉장한 장점이 있다.
나노튜브의 가격이 낮아지면 당장 각광을 받을 분야가 나노복합체 분야이다. 탄소나노튜브가 나노기술의 총아로 대접받고 있어 첨단기술로 분류되고 있긴 하지만, 응용방법이 어려우면 기업체가 채택하기를 꺼려한다. 말하자면 아무리 몸에 좋다고 해도 숟가락질이 어려우면 먹기를 싫어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탄소나노튜브는 역학적·전기적 성질이 우수하다. 탄소나노튜브의 이런 성질은 기존 제품의 성능 개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전도성 고분자라는 것이 있다. 모든 고분자는 완전 절연체이지만 일부 재료는 약간의 전도성을 띠고, 이런 재료는 정전기 방지용 덮개, 전지전극재료 등에 쓰인다. 그러나 전도도를 금속 수준으로 올리기가 쉽지 않다. 만약 이 재료에 탄소나노튜브를 약간 섞어 나노복합체를 만들면 문제는 간단하게 풀린다. 이때 나노복합체의 전도성은 탄소나노튜브를 넣는 양에 따라 조절할 수 있다.
탄소나노튜브 표면에 입혀진 전도성 고분자
전도성 고분자 탄소나노튜브 표면에 입혀진 전도성 고분자.
탄소나노튜브
전도성 고분자 + 탄소나노튜브
또 강도를 증가시키기 위해 고강도성 고분자에 나노튜브를 섞을 때에도 나노튜브의 양을 조절해 강도를 제어할 수 있다. 이밖에 탄소나노튜브를 고분자와 적절히 혼합하여 고강도의 실을 뽑아낼 수도 있다. 그러면 지금의 탄소섬유보다 훨씬 높은 강도를 가진 탄소나노튜브 섬유를 만들 수 있다. 이 복합체는 강도 및 연성이 좋아 비행기의 동체에 쓰일 가능성이 있다. 현재 미국의 나사 등에서 이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 세라믹재료에 탄소나노튜브를 응용하여 깨지기 쉬운 성질을 개선할 수도 있다.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사는 정전기 방지용 탄소나노튜브 복합체를 개발하여 이미 자동차에 응용하고 있으며, 페인트의 접착력을 키우는 데도 탄소나노튜브를 쓰고 있다.
그렇지만 이 분야의 활용도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노입자는 크기가 작아지면 서로 엉겨 붙는 성질이 강하다. 그러면 나노입자가 갖는 특성을 살릴 수 없다. 따라서 복합체 연구의 핵심은 어떻게 하면 탄소나노튜브를 복합체에 잘 분산시킬 수 있느냐이다. 분산이 잘되면 소량을 가지고도 원하는 특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연구가 원활히 진행되려면 복합체 재료를 이해하는 연구자와 탄소나노튜브를 이해하는 연구자가 공동으로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 이 연구의 발목을 잡는 것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다시 탄소나노튜브의 분산이다. 우선 복합체가 녹을 수 있는 용매를 선택한 다음 탄소나노튜브를 이 용매에 잘 분산시켜야 한다. 다발이 풀어져 한 가닥씩 분산되어 있으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탄소나노튜브의 길이를 줄이는 것이 유리하다. 길이를 줄이는 것이 복합체에 유리할 수도 불리할 수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탄소나노튜브를 분산하고 나면 문제는 쉬워진다.
원하는 고분자나 기타 재료를 탄소나노튜브가 들어 있는 용매에 골고루 섞으면 된다. 이때 탄소나노튜브와 고분자와의 결합을 강화시키기 위해 탄소나노튜브를 적절히 기능화시킬 필요도 있다. 이 분야의 시장은 무한히 넓다. 또 탄소나노튜브와 복합체를 만들면 성능이 개선된다는 것은 누구라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다만 현재는 탄소나노튜브의 가격이 너무 비싸 모두 눈치만 보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탄소나노튜브를 싸게 만드는 방법이 제시되면 탄소나노튜브가 기존의 복합체 시장의 구도를 바꾸게 될 것이다